경제&인물 / / 2023. 1. 23. 23:58

해리왕자도 즐겨입는 파타고니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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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외국의 세계적인 기업가 중에서 한국에서 살았던 사람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오늘 주제인 이 브랜드를 창업한 분인데요. 
60년대 초반에 한국에 2년 정도 있으면서 북한산 암벽 등반을 하고 아예 루트까지 개척을 했는데 이분 이름이 붙어 있는 이 루트가 지금도 인기 있는 등반 코스죠.

 

그러면 어떤 브랜드가 자기네 제품을 광고하면서요. '이거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이거 역시 오늘 주제인 이 브랜드 얘기인데요. 


환경을 보호해야 하니까 필요 없으면 더 이상 사지 마세요. 
막 그러는데 사람들이 막 더 사고 심지어 자본주의의 표본인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브랜드 제품을 유니폼처럼 막 입고 다니고요. 그게 뭔가 싶은데 그리고 왜 하고 싶은 것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뭐 이런 얘기가 있잖아요. 근데 이 브랜드 창업자의 스토리에는 그 얘기가 안 통하죠.

학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그렇다고 뭐 돈 벌고 싶은 생각도 없어 사업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기업을 만들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이런 생각도 없어 단지 원하는 일을 더 즐겁게 하려고 내가 쓸 물건을 만들고 약간 여비가 필요하니까 팔기도 했는데 그게 너무 잘 팔려서 뜻하지 않게 회사를 만들게 되고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고 또 세계적인 기업까지 일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인 자산 약 4조 2천억 원을 최근에 전부 다 기부해 버린 창업자가 만든 브랜드


나는 정말로 사업가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사업가가 되었다. 
사업은 그저 환경 위기를 알리고 그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이용할 뿐 이본 시나드의 파타고니아입니다.

근데 사실 예전부터 파타고니아를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지 말라고 하는데 다들 되게 많이 산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쯤부터 되게 인기가 있었잖아요. 

그러면 파타고니아는 왜 사지 말라는 광고까지 하게 된 걸까 창업자는 무슨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걸까요. 


파타고니아의 창업자의 이본 신나드는 1938년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본인이 책에다가 직접 이렇게 기록을 해놨죠. 
학교 다닐 때 얼마나 학업에 관심이 없었어요 수업 시간에 수업 듣기가 너무 싫어가지고 한 시간 내내 공명판에 구멍 개수를 세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뭐에 관심이 있었느냐 뭐 맨날 시간 내면 낚시하고 서핑하고 사냥하려고 또 매를 훈련시키고 특히 산을 좋아해서 암벽 등반을 즐겨 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요세미티 등지에서 암벽 등반을 즐겨하다가 자기가 쓸 장비를 직접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죠.

 

사업가로 훗날 성공하고 나서도 이렇게 얘기를 해요. 
나는 스스로 사업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나 자신과 친구들이 원하는 좋은 도구를 만드는 걸 좋아했을 뿐이다.

아무튼 그래서 중고로 화덕이랑 집게 망치 등등을 사가지고 피톤이라는 걸 만들기 시작해요. 
직접 암벽 등반할 때 바위 틈새에 끼워넣는 확보물인 피톤을 강철로 직접 만든 거죠. 


그전까지 대세였던 유럽산보다 더 튼튼하고 여러 차례 쓸 수 그래서 겨울에는 대장장이처럼 막 계속 장비를 만들고요 또 여름 내내는 암벽을 타러 막 돌아다니고요 차에다가는 자기가 만든 장비를 싣고 막 돌아다니면서 여비가 필요하면 또 그걸 또 팔고...

그리고 이렇게 다닐 때 텐트도 안 샀대 잠은 바위 밑에서 자고 나무 밑에서 자고 다람쥐 잡아먹고 하면서요. 


그리고 이 시절에 한국과의 인연도 생기거든요. 
군대에 가게 됐는데 주한미군에 배치를 받은 거예요. 


근데 이본 시나드가 군대에 가서 워낙 말을 안 들었었나 봐요. 반항하고 군대 가기 전에도 군대 안 가려고 막 간장을 통째로 마시다가 막 토하고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거든요. 
근데 워낙 말을 안 들으니까 주한미군에 와서도 장교들이 민간인들이랑 일하는 데를 보내버렸대요

뭐 장비 관리하는데 그런데 이때도 장교들 눈을 피해서 북한산의 암벽을 등반하기도 했다고 해요. 당시에 개척한 루트가 지금도 북한산에 있고요

참고로 이때 등반을 같이 하던 동료 한 분은 나중에 미국에서 일본 신화들이랑 같이 일을 하게 되죠. 

 

 

군 생활을 한국에서 암벽 등반하면서 보내고 다시 미국에 돌아가고 나서요. 
계속 그 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이본 시나드의 쉬나드 이킨먼트가 만든 피톤이 계속 잘 팔려나가기 시작했죠.
이게 왜 그랬을까 본인이 직접 카달로그도 만들어 뿌리고 이런 덕도 있었는데요. 


무엇보다도 자기랑 자기 친구들이 그 장비를 직접 사용하려고 만든 거잖아요. 
그래서 이 장비들의 기능에만 계속 집중해서 개량을 계속한 거예요. 
그래서 품질이 월등한 거죠. 더 가벼운데 강하고 단순하고 자기가 만든 장비가 기능을 제대로 못하면 자기랑 동료들 친구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막 하루에 막 열 시간씩 거의 막 무슨 돌을 닦듯이 더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또 일손이 부족하면 사람들을 그냥 고용하는 게 아니라 등반을 같이 하는 동료들 친구들 불러다가 일을 주고 이 모든 사람들이 사업이 본업이 아니라요

 

일하다가 여비가 마련되면 중간중간 등반하로 떠나고 여행 가고 근데 그 카탈로그를 만들면서도

'내가 여름에는 바쁘니까 연락이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배송이 늦어질 수도 있어요. 여름에 중반 하루 다녀야 되니까 기다리세요.'그런데요. 

이렇게 남들이 뭘 하든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살 거다 내 방식대로 일할 거다 이 방식이 오히려 시장에서 통합니다. 
어느덧 신나드의 회사가 미국에서 가장 큰 등반 장비의 제조업체가 된 거예요. 
당시를 두고 이본 신나드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무엇보다 수익률이 낮았고 그런 시장에 뛰어들려는 다른 바보가 없었기 때문에 경쟁이 심하지 않아서 우리가 1위가 되었다고요'

그런데요. 이렇게 1위 업체가 됐는데 자기가 등반을 다니면서 보니까요. 
암벽 중간중간에 자기네 회사가 만든 피톤 때문에 훼손된 흔적이 계속 눈에 띄더래요.+

 

이런 모습을 자꾸 보게 되니까 더 이상 피톤을 못 만들겠더라 나는 암벽이 좋아서 장비를 만들고 그게 사업이 됐는데 정작 내 사업이 내가 좋아하는 암벽을 망가뜨렸나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1등 사업자인데 이 피톤 만드는 사업을 그냥 접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피톤은 해머로 박아야 되는데 이 해머로 박는 피톤보다 바위를 덜 손상시키는 손으로 끼워 넣는 대체제를 만들기 시작하죠.

근데 사람들이 쓰던 게 있는데 계속 피턴을 만들어 내라 뭐 이런 얘기를 계속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본 시너드는 직접 이 대체제를 가지고 등반을 해서 이거 잘 할 수 있다. 좋은 장비다 이렇게 보여주고

그래서 다시 대체제인 초크가 잘 팔리게 되고 시나드 이키먼트의 사업도 계속 잘 되게 되죠. 

근데 사실 이본 쉬나드의 파타고니아라고 하면 옷이 제일 먼저 떠오르잖아요.
키토의 카라비너의 초크에 그렇게 등반 장비를 10년쯤 만들다가 어느 날 옷을 만들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옷이냐?

등반할 때 직접 입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등반 장비가 1위를 하고 있기는 하는데 이윤이 많지 않아 옷을 팔아서 이윤을 남겨가지고 등반 장비 사업을 받쳐보자

 

그러면서 1970년쯤부터 코드를 소재로 엉덩이 부분을 덧대서 안 해지게 만든 반바지, 무릎보다 좀 길게 나오는 반바지 등을 만들고요 그리고 럭키셔츠 등등

 

옷을 계속 만들어 내는데 의류 제품에는 쉬나드 이킨먼트가 아니라 다른 브랜드명을 붙여보자 이런 생각이 들어 장비의 진심이니까 옷에다가 그 이름을 붙여서 이 정체성을 훼손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이름이 보통 사람들한테는 세상의 끝 같이 여겨졌다는 남미의 산악지역 파타고니아 그리고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산의 모습을 본떠서 상표를 만들죠 그리고 1973년 파타고니아가 첫 매장을 열었는데요. 
사업이 대박이 났습니다.


왜 파타고니아 의류가 사업 초기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까요?


일단은 기능성이죠. 더 튼튼한 소재를 사용하고 다른 업체들이 양모나 오리털 면 같은 전통적인 소재에 얽매일 때 파타고니는 거기에서 벗어나서 기능성을 위해서라면 합성 섬유 같은 것도 과감하게 사용하고 그래서 사람들한테 알린 게 겹쳐 입기의 필요성이었어요. 


양모 스웨트 같은 거 입으면 따뜻하잖아 두껍고 근데 이게 산악 지역 같은 데서 등반하다가 젖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이게 무거워지기도 하고 체온도 떨어뜨리고 안 좋잖아요.
근데 합성 섬유로 겉옷을 입으면 이게 잘 안 적기도 하고 그 안에다가 또 천연 섬유라는 걸 입으면 땀을 흡수하고 뭐 이런 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겉에는 방수가 되는데 내부에는 안감을 더 떼가지고요 내부에서는 습기가 잘 안 차게 하고 땀도 흡수할 수 있게 하고 이런 시도 등등을 통해서 일단 파타고니아의 옷들이 기능적으로 뛰어났던 거죠. 


근데 이게 다가 아니었어요. 특히 히트를 친 건 제품의 색상 다양화였다고 하죠.
이게 무슨 얘기냐? 1970년대 이전의 상황을 묘사한 영화들 같은 걸 보면요. 당시에 운동복이라고 하면 회색 맨투맨 티셔츠에 반바지 혹은 면바지 이런 게 전부였대요 

 

아니면 흰색 셔츠 같은 거 입고 그나마 있는 아웃도어 오히려도 뭐 황갈색 황녹색 이런 게 전부였대요 

근데 이런 상황에서 파타고니아가 내놓은 럭비셔츠나 자켓 등등이 색상이 다양하고 화려한 거예요. 
여기에 소비자들이 열광을 하고요 등산하고 아웃도우를 즐기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파타고니아의 의류가 패션으로 녹아들기 시작합니다.

이본 신나드 역시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언젠가 복식사 연구자들은 남성들이 야외에서 회색 스웨 셔츠를 벗어버리고 다채로운 색상의 옷들을 입게 한 공로를 파타고니아에게 돌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


그렇게 파타고니아는 성장을 거듭하면서도 왜 과거에 같이 등반하던 사람들을 채용했듯이 직원이 자기랑 취미가 비슷하고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를 추천하고 또 친구가 또 친구를 데려오고 그렇게 직원이 계속 늘어갔어요.


이렇게 되면 어떻겠어요. 동질성이 있을 거 아니에요. 
구성원 간에 그러니까 직원들끼리 쉬는 시간에 같이 운동하고 여행 가고 휴가 내고 등반 가고 서핑하고 그러니까 또 회사는 또 이걸 지원하고 초기에 회사 문화를 이어가고 이렇게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1990년까지 파타고니아는 매출 1억 달러를 올릴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성장하는 동안 이본 시나드의 머릿속에는 뭔가 계속 찜찜한 생각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고 하죠.
나는 그저 자연을 누리기 위해서 최고의 등반 장비 제일 좋은 품질의 아웃도어 오류를 만들려고 사업을 하는 건데 사람들이 계속 우리 장비를 쓰고 우리 옷을 입고 할수록 자연이 예전 같지 않다 싶은 거예요. 


회사가 성장하면서도 이본 신나드가 틈마다 등반도 하고 그러기 위해서 여행도 계속했으니까 곳곳에 자연들을 보고 다녔을 거 아니에요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지로 계속 다녔는데 이렇게 보다 보니까 시간이 갈수록 자연이 훼손돼 가고
또 환경오염이 갈수록 심해지는 게 자기 눈에 보이더래요

 

그리고 파타고니아의 성장을 이끌어가는 제품들이 지금도 그렇지만요 기능성에 집중한 아웃도어 의류가 아닌 나머지 제품들이고 또 이런 제품들이 주력 사업이 되면서 불필요한 생산도 계속 느는 것 같고 우리가 환경오염에 계속 뭔가를 보태는 것 같고 심지어 해외 진출을 하는 찰나에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매출도 꺾이기 시작하고


우리가 왜 사업을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자 이렇게 생각한 이본신나드가 직접 남미의 파타고니아로 핵심 임원들을 데리고 떠납니다. 


파타고니아가 어떤 회사가 되길 원하는지 정리해보자 그리고 이런 내용 등등을 결론을 내리죠 우리가 카탈로그를 만들 때도 재활용 용지 같은 걸 사용해 왔고, 환경 운동가들도 지원을 많이 해 왔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가 과거에 환경 훼손을 막기 위해서 주력 상품인 피톤을 포기하고 문화를 이끌어 왔던 것처럼 사업을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된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고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우리는 사업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파타고니아는 더 많은 걸 변화시키기로 작정했죠. 


옷을 만드는 기업인데 라인을 더 단순화하고 재고를 줄이고요 페트병을 재활용한 소재로 재킷을 만들고 모든 면화는 유기농 목화를 사용하고 동물 복지에 신경을 쓰면서 약모 등의 천연 섬유를 생산하고, 새로 사는 걸 장려하는 게 아니라 수선을 권장하고, 수선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하여 소비자들이 쓸 만한 중고 제품을 갖고 오면 크레딧을 주고 이걸 또 세척하고 수선해서 다시 팔고, 생산 공장의 노동 관행을 더 낮게 만들려고 노력을 하고 그리고 환경 보호를 위해서 더 많은 기부를 하는 방향으로 실제로 움직이죠. 


파타고니아가 새로 매장을 낼 때도 건물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예전부터 다른 용도로 지어진 건물 오래된 건물들이 약간 폐 건물처럼 남아 있으면 그걸 사들여서 거기다 매장을 꾸며 또 그 아내를 꾸밀 때도 중고 가구나 또 자재를 사용하고 이런 식으로 했으니까

 

그런 광고도 나온 거죠. 이 자켓은 사지 마세요.

그리고 또 이런 움직임에 파타고니아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기도 했죠. 
또 어떤 사진을 보면 파타고니아 제품을 다 나가떨어져서 엉덩이가 보이려고 하는데 이거 버리지 않고 계속 웃고 다녀요 

 

근데 사실 어떤 고고해 보이는 슬로건이요 그저 구호 정도에만 그치고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자칫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기가 쉽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고상한 얘기들을 안 한 것보다 했을 때 같은 잘못을 해도 더 욕을 먹기도 하고요 

 

근데 파타고니아는 안 그랬어요.
오히려 더 나아갔죠. 환경보호에 미흡한 점이 있다고 지적을 받으면 재빠르게 상황을 개선하고요 2016년에는 블랙 프라이데이에 올린 매출 전체를 기부하기도 했어요. 

환경운동 블랙프라이데이면 대목일 거 아니에요. 그날 판 거를 그냥 천만 달러에 그냥 전액 기부한 거죠. 


그리고 이런 행보의 정점이 최근 있었던 창업자 이본 시나드의 전 재산 기부였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재단에 무려 4조 2천억 원이 넘는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했는데 이게 자기 지분만 한 게 아니라요 아내와 자식들 지분들까지 싹 다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러면서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본시나드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애초부터 회사를 만들 생각도 사업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내가 없어도 회사가 옳은 가치를 위해 계속 운영될 수 있으니 곧 죽어도 여한이 없다. 
파타고니아가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고 환경을 보호해서 모범을 보이겠다. 
파타고니아가 이걸 제일 잘 하기 때문에 사업을 계속하는 거고 사업은 그저 대의를 위해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


이런 이야기와 철학을 파타고니아 창업자가 행동으로 입증한 셈이겠죠.

파타고니아가 만들어진 지 50년쯤 됐는데요. 
다음 50년 파타고니아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요. 
지구를 위해서 사업을 한다는 그 목표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함께 지켜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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