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브랜드 샤넬은 1913년도에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에 의해 설립된 프랑스 브랜드이다.
이번 글에서는 수많은 여성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브랜드 샤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샤넬의 탄생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프랑스 소뮈르(saumur)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어머니는 어릴때 사망하였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하며 어렸을 때 오바진 수녀원으로 보내져 7년여 동안 머무르며 바느질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후 성인이 된 가브리엘 샤넬은 수녀원을 나와 봉제회사 생트리 마리를 다니며 저녁에는 카페의 가수로 일했습니다.
당시 그녀가 부른 노래 때문에 '코코'라는 애칭을 얻게 됩니다.
이후 후원자인 에드워드 카펠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1910년 파리의 패션거리 캉봉가 (rue Cambon)에 샤넬 모드 (Chanel Modes) 라는 이름의 모자가게를 엽니다.
초기에는 수수한 디자인의 모자는 상류층 여성들에게 외면당했는데, 당시 가장 유명한 프랑스 여배우가 그녀의 모자를 쓰면서 점점 인기를 얻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다
가브리엘 샤넬은 프랑스의 항구도시 도빌(Deauville)에 새로운 부티크를 열고 단순하고 편리한 옷들을 디자인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여성들의 노동력이 요구되는 사회에서, 화려한 장식의 기존 의복스타일보다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에게 점점 인기를 얻으며
1915년 프랑스 비아리츠에 첫 번째 양장점을 열고,
1918년 파리 패션의 중심지였던 캉봉가 31번지에도 진출하게 됩니다.
기존의 거추장스러운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착용할 필요 없는 여성복 가디건, 얇고 가벼운 저지 천을 활용한 투피스, 엉덩이 부분 옆선에 주름을 넣어 만든 샤넬라인원피스, 큰 호주머니를 단 짧은 소매재킷, 길도 따뜻한 머플러 등 1920년대 자유로운 복장을 추구하던 여성들에게 딱이었다.
샤넬 No.5
1921년 러시아 황제의 조향사였던 에르네스트 보에 의해 샤넬을 대표하는 최초의 향수 N°5가 출시되었습니다.
이는 마드모아젤 샤넬에게 보내진 샘플 중 5번째가 선택이 되었기에 붙어진 이름이라 합니다.
독특하고 여성스러운 향의 조합과 과하지 않은 심플한 디자인의 현대적인 병 디자인은 파격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당시 상류사회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죠.
샤넬 no.5는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향수로, 여성스러움의 궁극적인 상징으로 남아있어요.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먼로가 "잠자리에 들 때 몸에 걸치는 유일한 옷"이라고 한 말로도 유명한 향수죠.
여성의 불편한 의복으로부터 해방시킨 가브리엘 샤넬의 패션철학을 고스란히 담는 향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항상 제거하고 벗겨내되 절대 덧붙이지 마라" 가브리엘 샤넬의 신조였다고 하네요.
샤넬 no.5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향수로 현재 연간 약 1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샤넬 메이크업 첫 라인탄생
1924년 샤넬은 최초로 모조보석 등을 소재로 제작하는 코스튬쥬얼리를 출시합니다.
모조 소재에 대한 비난에도 가브리엘 샤넬은, "보석은 부나 집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위한 액세서리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또한 모조진주를 보란 듯이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정말 혁신적인 여성사업가가 아닐 수 없네요.
1929년 캉봉가에서 액세서리 부티크를 정식으로 열었고,
1934년 패션액세서리 컬렉션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샤넬이 코스튬쥬얼리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값비싼 쥬얼리도 하나의 패션아이템으로 해석해 1932년 파리의 개인주택에서 다이아몬드 주얼리 전시회 비주 드 디아망(Bijoux de Diamants)을 개최했다고 합니다.
명성의 절정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1935년 샤넬은 4000여명의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었으며 파리의 캉봉가에 5개의 부티크를 소유했었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액세서리와 향수점포만 남긴 채 부티크는 문을 닫게 됩니다.
제2의 전성기 샤넬이 돌아오다
1954년, 71세의 나이로 가브리엘 샤넬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패션 혁명을 일으키죠.
전쟁이 끝난 후 실용적인 복장이 아닌 화려한 의상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면서 패션업계의 새로운 트렌드가 됩니다. 하지만 샤넬은 이런 트렌드는 특정계층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1954년 2월 편안한 의상들이 주를 이룬 샤넬 컬렉션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1955년 2월 2.55백을 상징적으로 출시합니다.
"마드모아젤 락(Mademoiselle Lock"이라 불리는 네모난 잠금장치와 퀼팅 가죽을 골드체인과 결합한 숄더백 이란 것이 특징이죠. 여성의 손을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는 유연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어깨끈을 발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마드모아젤은 여성을 높여 부르는 표현으로 주로 가브리엘 샤넬을 부르는 명칭이었다고 합니다.
1957년 샤넬의 대표적인 투톤의 슬링백 신발을 제작합니다.
검은색과 베이지 색상으로 된 슬링백은 발을 작아 보이게 하고 다리는 길어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같은 해 샤넬은 미국 댈러스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패션오스카상을 수상합니다.
그 후 가브리엘 샤넬은 1971년 1월 10일, 87세의 나이로 37년간 머물렀던 파리의 리츠호텔에서 사망합니다.
리츠호텔은 샤넬을 기리기 위해 그녀가 머물렀던 방을 '코코샤넬 스위트룸'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칼 라거펠트 영입
1982년 칼 라거펠트가 샤넬에 영입됩니다.
당시 라거펠트는 기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했었다고 하는데요, 그의 경력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1983년 1월 첫 데뷔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기존 샤넬과 대중적 문화를 조합해 젊고 캐주얼한 샤넬로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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