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영화&tv / / 2023. 1. 15. 17:14

더 퍼스트 슬램덩크 탄생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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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슬램덩크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일본의 애니메이션 슬램 덩크가 연재가 종료된 지 26년 만에 귀환했습니다. 
2023년 더 퍼스트 슬램 덩크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 당시 농구에 죽고 못 살던 80년대생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는데 실제로 cgv와 네이버 영화에 따르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관람하는 관객의 60% 이상이 30/40대 남성이었다고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1억 부 이상이 팔리며 전 세계인들에게 농구 신드롬을 일으킨 슬램 덩크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더 퍼스트 슬램덩크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1967년 1월 12일 일본 규슈의 가고시마 현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이노우에 다케히코 훗날 슬램 덩크를 그린 세계적인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되는 인물입니다. 


이노우에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중학교 때는 검두에 열중하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친구들을 따라 우연히 농구부에 입단을 하게 됩니다.

이노우에는 작은 체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한 만큼 실력이 늘어나는 농구의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단체 훈련은 물론 늦게까지 나마 개인 훈련을 하며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농구부 주장까지 맡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고 이후에는 대학의 진학에서도 농구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노우에의 진짜 꿈은 만화가였습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만화가 미즈시마 신지를 좋아했는데 특히 야구를 소재로 한 도카벤이라는 만화를 감명 깊게 봤다고 합니다.

이 만화를 통해 스토리와 그림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실제로 그림체도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당장 미대에 진학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신 구마모토 대학의 문학부에 입학했고 언젠가 반드시 만화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대학 재학 중에 이노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를 소재로 한 첫 만화를 주간 만화잡지 소년 챔프 신인대회에 투고했습니다. 


이때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이노우에의 만화는 편집자로 있던 나카무라 타이조의 눈에 띄며 만화가로서의 가능성을 입증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마나가의 길을 걷기 위해 과감하게 학교까지 자퇴한 그는 곧장 도쿄로 상경했고 당시 시티 언터를 연주하던 호조 츠카사의 문화생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곳에서 약 10개월 동안 호조 츠카사를 보조하며 만화가가 되기 위한 기초 실력을 쌓게 됩니다.

그렇게 꾸준히 투고도 이어가던 이노우에는 마침내 1988년 농구만화 카에데 퍼플로 데츠카 상을 수상하며 만화가로서 정식 등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놓으라는 만화들이 줄줄이 수록된 소년 챔프에서 이노웨의 만화는 그리 인기 있는 편에 속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비인기 종목인 농구라는 소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그렇게 점점 순위가 밀려나는가 싶더니 파야드 퍼플은 어느새 꼴찌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이대로 낙담만 하고 있을 수 없었던 그는 문화생 시절을 떠올리며 1989년 카멜레온 자이의 자화가로 참여하여 스토리 작가 와타나베 카츠 입구와 함께 연재를 하게 됩니다. 


스승이었던 호조 츠카사의 대표작인 시티 언토의 영향을 받아 주인공 자일이 카멜레온처럼 자유자재로 얼굴을 바꾸며 사건 의뢰를 해결하는 내용이었는데 그의 스타일과 맞지 않았던 탓인지 큰 인기는 끌지 못하고 또다시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계속된 실패로 낙담하던 이노우에는 어떤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하는 깊은 고민에 빠지는데 그러다 1990년대 초 불현듯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야기를 만들 때 자신의 일부를 쓰는 것 사람들이 호응하고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선 카멜레온 자일처럼 내가 모르는 세계를 상상하는 것보다 개개인의 캐릭터와 살아있는 진짜 이야기가 더욱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의 일부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소재를 떠올렸더니 역시나 이노우에에게는 농구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노우에를 줄곧 지켜봤던 소년 챔프의 편집자들은 이노우에가 또다시 농구만화를 그린다고 했을 때 극구 말렸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의 스포츠는 야구 중심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농구 만화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포츠만 중심이 된 이야기는 매력이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나마 러브라인이 들어가야 봐줄 만하다는 편집자와 죽어도 농구 이야기를 그리겠다는 이 노후에는 팽팽하게 의견 대립을 했습니다.

결국 어느 한쪽도 물러섬 없이 농구와 러브라인 그리고 다른 스포츠 종목도 간간히 끼워넣는 조건으로 1990년 슬램덩크의 연재를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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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슬램덩크

슬램덩크

슬램 덩크는 가나가와 현을 배경으로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상고 농구부 5인방 사쿠라기 하나 미지 루카와 카에데 아카기 타케노리 미치 히사시 미야기 요타 우리나라 더빙판 이름으로는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 이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멈추지 않는 도전 등을 그린 농구 만화입니다.

작가인 이노우에가 가장 사실과 가까운 진짜 이야기를 추구하며 이를 갈고 그린 만화라 그런지 실제로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그림은 대부분 실제 모델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북산 가나가와 현립 쇼호쿠 고등학교는 도쿄 도립 무사시노 키타 고등학교를 라이벌인 능남고등학교는 실제 가와이 현에 위치하는 가나가와 현립 카마쿠라 고등학교를 모델로 외관은 물론 위치까지 가장 비슷하게 그려냈다고 합니다.

또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등장하는 철길 역시 에노시마 전철을 그대로 묘사해 슬램덩크 팬들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보는 성지가 되기도 합니다. 


슬램덩크의 경기장들 역시 허투루 그리지 않았는데 만화에 등장하는 시합장은 센다이시 체육관 아키바다이 문화체육관 히라츠카 종합체육관 오타케시 종합시민회관 등을 모델로 그렸으며 스토리상 전체 연제분의 약 5분의 1을 차지하는 산왕전을 치른 경기장은 이시다 기념체육관을 모델로 삼아 그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등장 인물들이 입었던 옷 역시 mba 현역들이 입던 유니폼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는데 북산 쇼오크의 경우 시카고 불스 유니폼을 상향 쇼오는 보스턴 셀틱스를 해남 부속곡 카이나는 la 레이커스를 참조하여 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슬램 덩크의 주인공인 강백호가 신었던 신발은 나이키의 에어 조던 6와 에어 조던 1 브레드 모델이며 서태웅은 에어 조던 5를 싱켰다고 합니다.

자신이 겪었던 가장 의미 있었던 경험을 가장 사실적인 그림으로 묘사하고 전달하고 싶었던 이노우에의 노력과 맞물려 1990년대 들어서 맞이한 농구 전성기라는 시대적 축복을 타고 슬램 덩크는 그야말로 메가히트를 치게 됩니다. 


1990년대부터 연재를 시작해 끝나는 1996년까지 약 1억 7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이전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반향을 일으키게 된 겁니다. 그 인기에 힘입어 1993년 10월 아사히 tv에서는 총 101개의 에피소드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습니다. 


방영 당시 평균 시청률이 15.3% 최고 시청률은 21.4%일 정도로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으며 미국에 마이클 조던이 있다면 일본에 슬램덩크가 있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슬램덩크의 인기는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우리나라 역시 대원 비디오판과 sbs 방영판 두 가지 버전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는 현주엽 서장훈 문경훈 우지원 전희철 이상민 등 농구 대잔치 세대가 주름잡던 시대로 우리나라 역시 농구라는 소재가 주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 시기 슬램 덩크가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입니다. 


비디오 판의 경우 50br를 기점으로 성우진이 바뀌는 바람에 몰입감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아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지만 1998년에 방영된 sbs 방영판 슬램덩크는 특히 가슴이 웅장해지는 오프닝곡과 엔딩곡이 만화와 더불어 큰 인기를 끌며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추억의 노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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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슬램덩크

강백호가 된 사쿠라기 하나미치

슬램 덩크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원래 이름은 사쿠라기 하나미치, 루카와 카에데, 아카기 타케노리, 미치 히사시, 미야기 루타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건 아무래도 한국어 번역 이름인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일 겁니다. 


왜 원작의 이름이 버젓이 있는데 굳이 한국 이름을 사용했던 걸까 이것은 사실 그 당시 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슬램덩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던 1992년대에는 외색이 있는 것은 문화적으로 반감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이기에 일본식 이름이나 지명을 그대로 쓰면 안 된다는 심의 규정의 적용을 받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드래곤볼의 프리더와 같이 시대 불명의 이름은 상관없었다고 하는데 슬램 덩크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모두 일본어 이름이었기 때문에 모두 한국 이름으로 새로 지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당시 슬램덩크의 편집자였던 정숙은 각 캐릭터만큼이나 개성 있는 이름들을 우리 식으로 어떻게 가장 어울리게 지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주인공 사쿠라기 하나미치를 강백호로 지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학창 시절 백호기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이름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친구여서 백호라는 이름을 떠올렸습니다.
이 이름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강 씨와 서 씨를 후보로 두고 이름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강인한 이미지를 주는 강백호라는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태웅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이름이 지어졌으나 채치수 송태섭 정대만은 물론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선수 캐릭터들이 많다 보니 나중에는 이름 짓는 게 너무 어려워 실제 졸업 앨범을 뒤져가며 만화 이미지와 가장 닮은 외모를 가진 친구들의 이름과 성씨를 조합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작명했다고 합니다.

일본어 표기 금지 규제가 풀린 1998년에 sbs에서 방영된 슬램덩크에서도 한국어 이름이 그대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일본 이름보다 더 찰떡같이 어울리는 우리나라 이름이 팬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슬램 덩크의 북상구 5인방은 강백호 서태우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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